이로윤




< 공존 >


나의 성장에는 많은 이들이, 감정들이 함께했다.

상반되지만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오히려 그러해서 강렬하게 잔상에 남는 이들이, 감정들이 공존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가족일 것이다.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눈물로써 마지막으로 다툼으로 나의 모든 성장에 있어 가장 크게 존재해왔기에.



아는 사람을 알겠지만 나는 세상에서 나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

머리가 큰 지금도 여전히 그 분의 발자취는 여전히 멋있다고 생각되기에.

모든 세상이 다 아는 분은 아니지만 가족으로서, 사람으로서 본 받을 점이 많으신 분이기에.




우리 어머니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셨다.

그리고 어떤 숙제를 들고가도 뚝딱뚝딱 만들어 내주시는 어머니는 내 눈에 슈퍼맨이었다.


그런 어머니는 사랑을 받은만큼 남에게 베풀 줄 아시는 분이었고, 남에게 베푸는 만큼 자녀들에게도 원없이 많은 사랑을 주셨다.

사랑을 나눠주는 일은 돈이 없어도 물질적인 어떤 것들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회를 겪어보면 때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남에게 베풀 줄 알던 어머니 덕에 나는 더욱이나 다듬어진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아니, 아직도 다듬어지고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삶의 방향성을 이끌어주고 본받고 싶은 분이라면 어머니는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하여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이랄까.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불만이 가득한 나의 위치에서 나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게 해준 것은 함께하는 ‘선물’, 동생이었다.


가끔 흔들리고 버거운 날들이면 함께 어딘가를 다녀오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많이 다투었지만 그래도 어느 누구보다도 내 편이 되어 따끔한 충고를 던져주던 선물이자, 인생의 동반자.


혼자였더라면 견뎌 낼 수 없었던 시간들을 함께 한 시대를 같이 걸어 온 나의 선물.






글을 좋아했지만 어떠한 방식으로 글과 소통하는지 알지 못했다.

열일곱. 그 어린 나이에 마주하였던 나의 선생님은 나의 글을 계속하여 읽어주셨고, 또 써보라하셨다.

기회가 있으면 흔쾌히 기회를 주셨고 글 하나하나에 첨삭이 아닌 ‘감상평’을 써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어 선생님으로서 수 많은 학생들 중 한 학생의 글에 감상평을 여러 줄 써 주신다는 것은 아마도, 아니 필히 애정이었으리라.


감사하게도 나는 그 애정을 가득 받은 덕에 무럭무럭 자라 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단 열매를 맞이하였음을.

순간의 내가 아닌, 십 여년 후의 나를 키워주신 것은 분명 그 분의 덕이었으리라.





나의 모든 길에는 너희들이 있었다.


울던 순간에도 웃던 순간에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던 그 순간에도.6




때로는 모든 이들의 기대감 속에서 무거운 중압감을 견뎌내기도 하였고 그 길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많은 이들과 감정과 공존, 그 자체였다.


그것은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와 함께 살아오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이 자리를 빌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빛내고 있음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