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사정

사랑이 시작되는 계절은 결코 봄이 아닌걸요,

배수현










이야기를 시작하며


사정없는 계절이 어디 있겠어요. 


사연없는 사람 또한 없듯이요.


미처 다 전하지 못한 편지들, 그리고

그 계절들의 사정을 기록했습니다.










개요




여름, 

계절의 시작


가을, 

두 번째 계절


겨울, 

그토록 뜨거웠던 계절, 어쩌면 여름이라는 이름보다


봄, 

떨어뜨려 깨져버린 얼음과 함께 부서진 마지막 계절


에필로그











여름, 

계절의 시작




< 공유 >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알려준다는 것.

발끝부터 머리카락이 서는 느낌과 함께 지구에 나라는 존재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아찔함을 안겨주는 노래들이 있다. 아티스트의 이름도 곡의 제목이 문장으로 길게 이어진 영어라면 더욱,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주의 첫 음만으로도 그새 다음 멜로디를 읊조리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음악이 있다.

나는 감전시키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과, 장소와, 사람과, 그리고 음악을 공유한다. 안전하게 혼자 듣는다면 누구의 취향을 고려할 필요도,

‘이 노래의 절정은 여기야!’ 라는 생각 뒤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파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분명 같이의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나와 같은 순간을 공유하며 음악으로 인해 또 한번 연결되는 순간.

그 두번의 순간이라면 어느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거라 감히 확신한다.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말이다.




< 서로의 온도에 녹아 끈적거려 아마, 불쾌지수 수치와 비슷했던 우리의 첫 계절 여름 >


 “내가 이만큼을 줬으니, 내게 이만큼을 줘. 아니 사실 그 이상을 줘.“

이것이 네가 말하던 이상적인 연애였을까. 남들보다 조금 급해 섣불리 판단해버리는 나의 성격이 다툼의 시발점이었을까.

 

샤워를 하며 생각을 정리해봤어. 마무리 짓지 못하는 방 정리처럼 느릿느릿, 그러다 장롱 속으로 구겨져 들어가는 옷가지들처럼 그렇게 대충. 어기적거리며 청소했지만 결코 깔끔하지 않은 방을 보며 나는 생각했어. 당신은 당신이고, 난 누군가를 바꿀 수 없고. 사람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너무 잘 알아 이유 모르게 시작된 의심이 나를 점점 크게 덮쳐 네가 보이지 않아 암전이다. 그렇다고 되지 않는 노력을 해 너를 사랑할 자신도 없어.

그래서 내 여름은 불행해.











가을, 

두 번째 계절




< 쌀쌀함을 느낄 때쯤 옷을 벗어주는 너를 기대하기에는 너의 옷이 너무 얇아서 >


 그러니까 참 연애는 힘든 거다. 연인과 연애, 두 단어의 온도는 얼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상반되는 느낌을 준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기에 친구를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과도 나누어 보지 못한 주제다. 

 누구나 마음속에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씩 있듯, 나 또한 애청하는 채널이 있다. 웹 드라마를 짧게 짧게 올리는 채널인데 그 5분에서 7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정말 여러 감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중에서도 댓글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한데


술에 취한 연기를 하는 배우의 대사 중 한 소절이다. 

 “너는 형석이랑 사랑하는 거를 그거를 사랑한 걸로.”

 관련 댓글에 그냥 그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 그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해버렸을 때가 제일 지독하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그게 왜 지독한건데?’라며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아마 행위와 대상 중 포커스가 어디에 맞춰졌냐에 따라 그 사랑이 더 지독할 수도 덜 지독할 수도 있다는 거겠지. 그렇지만 결국 모든 사랑이 그렇듯 결론적으로 대상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을까. 설사 시작은 사랑한다는 행위에서 시작됐더라도 결국,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대상을 사랑해서 시작한 사랑이더라도 훗날 사랑했던 기억들만 좋은 채로, 그리고 대상은 증오하게 될 수도 있는 게 사랑이겠거니와 해서.


 그래서 그냥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정의하려 하면 할수록 정의되지 않는 게 사랑이겠거니와 해서. 그 채로 계속 머리 아프기로 했다.











겨울, 

그토록 뜨거웠던 계절, 어쩌면 여름이라는 이름보다




< 사랑에 대하여 >


사랑을 떠올리면 붕어빵이 떠오른다 이유는 딱히 없다. 눈이 소복소복 쌓여 같이, 같은 곳으로 걸어가다 불 켜진 붕어빵집이 보이면 별똥별이 떨어지듯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렇게 허겁지겁 천 원어치 붕어빵을 사고 호호 불며 호들갑을 떨며 먹다 남은 한 개의 붕어빵을 두고 서로 먹으라고 아웅다웅하는, 별거 없게도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정확히 하자면 사랑하는 모습 중 한 부분이다.

 사랑에 있어 참 멋없는 내가 했던 사랑은 아마 후회의 연속이다.

지난날 후회하던 내가 없어도 나는 지금의 모습을 갖췄을 것이다. 혹여 더 멋있을 수도 있었을 테지, 아프기만 아픈 사랑도 물론 없지만 좋기만 한 사랑도 없었고

매 순간 아팠고 좋았고 후회의 연속이었고

그렇기에 그때의 결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글쎄 그렇게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그렇지만 나는 또 후회의 연속일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순간들을 종종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런 바보 같은 순간들이 영원하길 바라며.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바보 같을 예정이고 보다 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아마도, 열심히 사랑할 것이다. 멋없게 쭉




< 2021 >


초등학교에 신발주머니를 빼놓고 등교한다는 사실을 온 거리에 반이나 되는 지점까지 와서야 깨닫고 조그마한 발로 잘도 뛰어 다시 집에 들러 학교로 출발하던 그 맘 때. 2012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당시엔 잘 보지 않다가 성인쯤이 돼서야 그때까지도 줄기차게 하던 재방송을 본 후 2012를 처음 접했다. 12에서 서로가 바뀌어 어느새 21년도인 지금,

세상은 얼추 멸망했다.

끝나지 않을 거 같은 팬데믹과 싸우며, 누군가는 버텨내며, 누군가는 끝끝내 무너지며, 누군가는 체념하듯 받아들이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런 시국에도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워하며, 당신과의 소리를 기록한다.

나를 사랑하는 온기를 붙잡고 놓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지금의 내 세상처럼 로맨틱하지 않기에 나는 매일같이 아쉬운 이별을 한다.

 철없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세상이 조용해지면서 나와 당신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었다. 이전의 시끄럽던 세상에서, 찾을 곳은 너무나도 많았다. 어느 곳을 가도 괜찮았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지긋지긋한 이 재앙 속에서 나는 매일 희망을 만난다.

이곳만이 전부이자, 나에게만 허락되는 곳.

바라는 것은 단지 당신의 평온이고, 평안이다.











봄, 

떨어뜨려 깨져버린 얼음과 함께 부서진 마지막 계절




< 다짐 >


잊는 건 오롯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마음을 주지 않았기에 눈을 맞추지 않았기에 곱씹게 되는 순간

그리고 드는 생각

더 후회 없이 사랑해야지




< 24 >


“연애 안 해본 거 아니잖아”

 많이 하면 할수록 느는 게 연애라면 난 그 세상에서 돌연변이고 그곳의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이단아이고 싶다. 연애를 잘한다는 건 대체 누가 정해놓은 기준일까?

해도 해도 모르겠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 만들어놓은 잣대에 갇혀버린다. 사랑만으로는 안되는 연애, 스물넷 젊은 날의 연애, 현실을 무시하기엔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나이의 연애, 그렇다면 연애의 정석이라는 책이라도 있는 거냐며 울부짖는 나이의 연애, 가장 날 것을 원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간절히 원하는 나이. 그런 내가 이상하다 말하는 현실에 목적지를 잃어버린 연애, 전혀 반갑지 않을 초대하지 않은 손님의 방문처럼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 맞이해버린 스물네 살의 이별. 예나 지금이나 답을 찾아 헤매는 나이 스물넷.




< 자상 (刺傷) >


자상 (刺傷)[자ː상]

명사

1

칼 따위의 날카로운 것에 찔려서 입은 상처.

그의 허리에는 깊숙한 자상이 있었다.

2

찔러서 상처를 입힘.


지금쯤 이렇겠지. 시간이 지나 그때쯤은 이럴 테고, 이렇고, 저렇고. 머리를 스치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있다. 타인이 나에 대해 이렇다 판단할 거라는 생각. 이불 안 팎으로 사랑을 말했던 사람과의 이별 후 떠오르는 합리화들. 그리고 곧 무너질 나의 다짐들. 결국 끝맺지 못해 남은 나의 화들. 고개를 끄덕이며 필히 공감했던 문장이 있었다. 클리셰 같을 수 있지만

 그것은 모래 같아 잡으려 하면 할수록 가락 사이로 더 빠르게 빠져나간다고,

지나간 사람을 잡아 무엇 하겠는가. 추억은 또 무엇하고. 다만 떠오르는 생각을 더 꽉 잡아 속도를 내어 손가락 사이로 떨어뜨리고 싶진 않다. 잠깐 내 기억 속에 머물다 스스로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자'신만의 '상'상으로.




< 위로 >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단어를.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배가 고파 어미의 모유를 찾는 새끼처럼 계속해서 찾아댔다. 그렇게 읽어 내리다 보면 내 막막함도 내려가 있겠지, 언제 이만큼이나 읽었지, 하며 하나하나 넘겨갔던 지난 페이지들을 토도독 소리가 나도록 빠르게 한 번 더 넘겨볼 정도로 내 아픔도 내려가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글자만 찾았다. 음악도, 영화도, 여행도 내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글을 쓸 수 없는 슬픔에, 더 이상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떠올릴 사람이 곁에 없음에 무턱대고 읽어 내려갔다. 차곡차곡, 어찌 보면 무지막지 쌓아둔 글자들이 정리되어 언젠가 내 마음에 답을 내려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것이 나의 위로였다.











에필로그




나를 믿지 못해 내린 선택은 모두 나를 비웃듯 입을 막고 웃어댔다. 우리들의 세상엔 내린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알고 있는 공식들이 있다.

 ‘할까 말까 할 땐 하라. 말할까 말까 할 땐 말하지 마라. 살까 말까 할 땐 사지 마라.’ 등등 


 그렇게 정해진 대로 해내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사람인 걸요 결국 저가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그렇게 둬요 그런 공식들은 생각지 말아요.











이야기를 마치며




여름에 시작했던 사랑과, 그 여름의 사랑으로 쌀쌀함을 덮을 순 없었던 가을.

누군가에게 아리게 차가웠을 겨울은 누군가에겐 마치 난로에 걸쳐놓고 까먹은 옷가지처럼 뜨겁게 타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가장 따듯할 계절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은 누군가에겐 꽃놀이 후 사람들에게 밟혀지는 꽃잎처럼 무너졌을 수도 있어요.

각자의 사정에 묻혀 하지 못했던 계절들의 얘기를 손을 빌려 적었습니다.


주제를 사랑으로 정하고 그 과정을 계절로 표현한 것은 결코 지난 사랑을 그리워해서가

아니에요. 계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만큼 뒤돌아보면 나도 이미 다 지나있었습니다.

그것이 우울이든, 고통이든, 행복이든 간에 그 순간은 어느새 지나가있어요.


누군가를 추억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단지 나와 같은 시간을 겪었을, 혹은

겪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감히 조그마한 위로를 아니 무한의 응원을 보냅니다.







배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