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이방인

이은지 LEE EUNJI




Bukbyeondong, 2021




김포가 시작된, 김포의 마지막 옛 시가지 북변동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나와 북변동


2019년, 나는 중국인 스다와 결혼해 이미 김포를 떠나 중국에서 살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정리하고 중국에서의 삶을 준비했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로 인해 2년째 김포에서 예정된 이방인으로 머물고 있다.


북변동은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 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곳을 지나치면서 단순히 오래된, 곧 바뀌게 될 곳 정도로 여겼다. 그러면서도 이 오래된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생소할 만큼 낡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겹겹의 시간이 고스란히도 느껴지는 곳. 버스로 스치는 것이 아니라, 산책할 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곱씹어 본 이곳은 단지 공동화 되어버린 거리가 아닌, 100년 역사와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는 산 역사의 현장. 재개발을 앞둔 김포의 원도심이자, 마지막 옛 동네였다.




Bukbyeondong, 2021
오늘도 열려있는, 50년 된 수제도장가게 성심당의 문



Bukbyeondong, 2021

항상 저 자리에 앉아 계시는 으뜸사 할아버지가 낮잠을 자고있다



Bukbyeondong, 2021




지금, 이곳에


어느 장소를 쳐다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북변동에서 처음 내게 감응을 일으킨 것은 비워진 공간의 적막함, 그리고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이었다.

대부분 간판은 남아있어서, 그 거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적막하지만 과거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는 것 같은 공간들.

남은 간판과 쓰레기로 남은 물건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사람이 있던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발견되는 것은 다양한 삶의 단면들과 ‘지금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


점점 비워지는 곳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나는 떠난 사람들보다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왜 지금까지 여기에 있는지 의아하게 여길 때쯤, 북변동 사람들이 10여 년간 재개발 사업과 싸워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개발이 확정된 이 시점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가게 문을 열고, 오일장에 나와 물건을 팔고 있다. 

중국의 비자가 허용되면 중국의 집으로 떠날, 예정된 이방인으로서의 나는 그들을 보며 나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게 되었다. 

잦은 이사를 다니며 늘 어딘가로부터 떠나왔던 내가 어느 장소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은 처음이다. 

이것은 잠깐이라도 정든 곳을 떠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다. 나의 현재와 정체성을 어느 장소로부터 떠올리는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Bukbyeondong, 2021

관공서를 중심으로 상권이 활발했던 북변동에는 숙박업소와 유흥업소, 교회가 많다.
현재는 관공서 이전 및 신도시 개발로 그 명성을 잃었다.



Bukbyeondong, 2021

코로나 시대의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까
무교인 나는 늘 질문을 가진 채 교회를 쳐다보게 된다.



Bukbyeondong, 2021
여전히 영업 중인 뒷골목의 미용실과 곱창집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앉을 사람이 없어진 빌라 입구의 의자들



Bukbyeondong, 2021

지금도 많은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는 효병원 앞 정류장




도로시아 랭

"카메라는 카메라 없이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하는가를 가르치는 도구"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마음이 닿는 이미지를 수집 하듯 찍어왔다. 그 사진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리되지 않으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 냄새가 베어있는 순간을 담아오려 했던 것 같다. 북변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이 떠났고,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거리에서 비워진 공간과 함께 여전히 살아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거리를 반복해서 걸으면서 혼재하고 있는 삶의 흔적들을 마주쳤다.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이것은 카메라를 통한 기록이지만 점점 스스로와 사진에 대한 질문이 되었고 사진을 찍는 행위보다, 그들(그곳)을 쳐다보고, 그들을 경험하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도록 만든 작업이 되었다.




Bukbyeondong, 2021

식당 앞 의자에서 나물을 말리고 있다.



Bukbyeondong, 2021

이 상점의 시간은 2020년에 멈추어 있다.




살아있는 오일장


경기 4대 오일장 중 하나라는 북변 오일장.
북변 백년의 거리 중앙에서 공영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규모로는 가장 큰 오일장이다. 이 주변에는 시장이 없고 오일장이 선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공영주차장 옆으로 항상 차가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나는 우연히 오일장의 인파를 마주하고 꽤나 놀랐다. 최근엔 어딜 가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가족과 일 년 반을 넘게 떨어지게 한 사실보다, 어느 장소에 사람이 많은 것을 생경하게 만든 것이 더 크게 느껴지던 오일장. 그곳에는 내가 포착하는 삶의 인상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그곳은 삶을 포착한다기보다는 겪는다는 말이 더욱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꼭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오일장에 갔다. 처음에는 마트나 웹 주문이 익숙해진 세대인 내게 옛 것의 향취가 크게 다가왔다면, 나중에는 목소리를 통해 서로가 연결되고, 단지 걷고 있기만 해도 그 속의 일원이 되는 듯한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옛 것의 향취는 코로나 이전에 느끼던 사람의 향취로 바뀌었다.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잠시 스쳐 지나가던 곳, 김포


김포는 옛날에 강화도로 유배 가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장소였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포는 강화도에 가기 전 지나치는 장소였기에 김포를 터전으로 삼던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나 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민한 눈초리를 느꼈다. 나도 어려서부터 늘 떠나오던 습성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 없이는 이웃 주민과 동네에 정을 붙이지 않고 살아왔다.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처럼 사람들과 정을 나누면서 사진을 찍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겁도 많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아무 때나 그 사람들의 순간을 쉽게 기록하지 않기 위해 애쓰던 찰나에. 카메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나에게 돼지감자칩을 팔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언니, 어디 찍어요?” 

“나도 찍어주세요. 김포 오일장 아저씨~
저쪽도 찍어줘. 꽃집 아저씨. 여자 좋아하는 아저씨. 여자 엄청 밝혀.” 



 

Bukbyeon five-day interval village marker, 2021




그들에게는 잠시 왔다가는 입장인 내가, 이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존권이 걸린 사람들의 문제를 낱낱이 파헤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단지 과거가 될 현재를 기록하는 것만으로 이 작업은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은 후로  북변동에 갈 때마다, 오일장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있을 때마다, 사진을 생각하고 있으면 점점 내가 더 이방인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가면 갈수록 나는 사진보다는 그 장소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사진은 그것을 증명하는, 부수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돼지감자칩 아저씨에게 꼭 사진을 전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 달여 만에 다시 오일장을 찾았을 때, 나는 아저씨가 찍으라던 꽃 파는 아저씨가 돼지감자칩 아저씨의 친동생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은 직접 인화한 사진을 받고 너무너무 좋아했다. 아저씨와 부인은 내가 준 사진을 매대에 올려놓고 팔겠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다시 카메라에 담았다. 꽃집 아저씨와 돼지감자칩 아저씨의 부인은 고맙다며 한 장밖에 안 남았다는, 국산을 강조하던 검정 마스크를 주었다. 







마스크를 선물로 주고받는 시대가 된 현재

김포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것,

오리지널을, 오리지널의 방법으로 남겨보는 일

현재를 과거의 형태로 쳐다보고 인식하는 일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1930년에 문을 연 대동철물 자리에 김포 로컬 아티스트인 제바(XEVA)의 그래피티가 그려져있다.
백년의 거리 그래피티 아트 프로젝트 설치 전경



Bukbyeondong, 2021

김포에 처음 생긴 서점인 해동을 개조하여 만든 사회적기업 어웨이크의 문화자생공간 ‘해동 1950’



Bukbyeondong, 2021

북변 363예술광장 : 김포시 북변동 363번지에 위치한 우체국 자리를 예술광장으로 만들었다.




북변동 백년의 거리는 고려시대에 생긴 400년이 넘은 향교와 100년이 넘은 김포 초등학교, 70년이 다 된 구 성당, 50년이 넘은 도장집, 

60년이 넘은 중국집 및 약국, 1947년에 생긴 김포 첫 인쇄소 등 역사를 간직한 유적과 상점들이 반경 500미터 이내로 모여있는 곳이다. 


북변동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 단체 및 상점 주인들, 주민들. 

여전히 재개발 해제를 외치며 오랜 시간 동안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예정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앞에 ‘영원히’를 붙여야 할까. 



Bukbyeondong, 2021



Bukbyeondong, 2021, gelatin silver print 11x14 inch




Epilogue

장소와 사진



스스로 정한 연결고리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작업하는 내내 들던 생각. 이곳에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결국 나라는 사람이 이방인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되는 것, 계속해서 떠나간 사람, 떠나갈 사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역사의 층위를 가진 풍부한 사람이었다는 것, 현재 이곳에서의 삶과,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나의 장소와 사진으로 깨달았다는 것, 김포가 인생에서 의미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 이를 깨달은 것이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삶의 흔적이나 과정이 보이는 낡은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것, 그 속에서 이치를 얻는 행위를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삶을 위해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개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보다도 내 모습은 쌓이고 쌓여서 생기는 것임을 깨달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은지